[커피칼럼] 왜 커피콩축제인가

  • 등록 2026.08.08 14: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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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서 시작해 세계로 확장된 축제
※ 본 칼럼은 제4회 세계커피콩축제를 기념해 기획된 연재 시리즈입니다.


[글: 김경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Logos)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세계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고 수많은 존재와 가능성을 생성하는 근원적 원리를 가리킨다. 대학 시절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에 관심을 가졌다. 본질은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변화와 확장을 지탱한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을 접하며 더욱 분명해졌다. 인간은 유한한 규칙을 바탕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문장을 무한히 만들어낸다. 중심 구조가 있기 때문에 표현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다. 본질은 변화를 막는 틀이 아니라 변화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생성의 기반인 것이다.

본질을 묻다

세계커피콩축제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원에서 커피학을 공부하던 시절 교수님들과 한국의 커피문화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은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지만, 시장의 성장에 비해 커피를 학문과 문화의 관점에서 깊이 탐구하는 기반은 충분하지 않았다. 커피축제라는 이름의 행사 역시 원두와 장비,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소비박람회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그때 우리는 질문했다.

진정한 커피축제란 무엇인가. 수많은 프로그램을 하나로 묶는 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왜 ‘커피콩’인가

답을 찾기 위해 완성된 한 잔에서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카페와 바리스타 이전에 로스팅과 생두가 있고, 그보다 앞에는 가공과 수확, 농장과 자연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커피콩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커피콩은 커피체리 안의 씨앗이다. 그러나 ‘커피콩’이라는 말은 커피의 출발점을 가장 대중적이고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한 알의 커피콩에는 품종과 토양, 고도와 기후, 농부의 노동과 가공자의 판단이 축적되어 있다. 로스터가 열로 그 가능성을 해석하고 바리스타가 물을 통해 한 잔으로 완성한다.

따라서 진정한 커피축제의 중심에는 완성된 음료뿐 아니라 커피를 생산한 나라와 농장이 있어야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농장들이 자신들의 커피를 소개하고, 생산국 대사관이 자국의 커피산업과 문화를 알리며, 한국의 전문가와 시민이 이를 경험하는 축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이름도 ‘세계커피축제’가 아니라 ‘세계커피콩축제’로 정했다.

‘세계’는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커피콩 자체가 생산국의 농장과 소비국의 도시, 서로 다른 대륙과 사람을 연결하는 세계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콩’은 그 거대한 세계가 시작되는 가장 작은 중심이다.

이 철학은 실제 축제의 구조로 이어졌다. 커피 생산국의 농장과 대사관을 초청했고, 생산국의 대사와 외교 관계자들이 시흥을 찾았다. 축제는 커피를 매개로 국가와 국가, 농장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문화외교의 장이 되었다.

커피콩에서 세계로

커피콩이라는 본질은 축제를 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확장의 출발점이 되었다.

세계커피포럼에서는 생산과 무역, 산업과 문화, 도시와 관광을 논의했다. K-커피대학은 커피를 역사와 철학, 예술과 과학, 기술과 산업의 관점에서 교육했고,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K-커피칸타타 공연은 커피의 문화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계커피대회(WCC)와 K-커피어워드는 세계의 농장과 한국의 전문성을 연결했다. 세계 각국의 농장이 커피콩을 출품하면 한국의 전문가들이 이를 평가했다. 여기서 K-커피는 세계의 커피를 한국의 감각과 기준으로 발견하고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청소년·장애인 대회와 시민 커피퀴즈대회 역시 관람객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배우고 평가하며 직접 참여하는 문화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시도였다. 수상 농장과 생산자를 초청해 공정무역과 지속가능한 생산을 논의한 것도 커피콩의 중심에 생산자의 노동과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서로 무관한 행사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커피콩이라는 하나의 본질이 교육과 포럼, 대회와 예술, 외교와 공정무역으로 확장된 결과다.

한 알의 콩이 도시의 문화가 되기까지

세계적인 축제는 처음부터 거대한 국가행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지역 고유의 문화에서 출발해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축제로 성장한다. 세계커피콩축제 역시 시흥에서 시작했지만 시흥만을 위한 축제에 머물지 않는다. 커피콩을 중심으로 세계의 생산국과 농장, 전문가와 시민을 연결하며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커피콩을 신학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로고스를 사유하며 배운 태도는 축제의 철학에도 이어졌다. 수많은 현상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을 찾고,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에 모든 확장을 지탱할 중심을 세우려는 태도다.

세계커피콩축제에서 그 중심은 커피콩이다.

한 알의 커피콩은 한 잔의 커피가 되고, 한 잔의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그 만남은 교육과 예술, 산업과 외교로 확장되며 마침내 한 도시의 문화가 된다.

우리가 커피축제가 아니라 세계커피콩축제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축제는 커피를 많이 판매하는 행사가 아니다. 한 알의 커피콩에 담긴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를 시흥에서 다시 연결하는 축제다.

글쓴이 김경민은 시흥 세계커피콩축제 감독으로, 신안산대학교 호텔제과제빵과 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 세계커피연구소 소장, 아마츄어작업실 대표 등을 맡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커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미니멀리즘 커피연구〉가 있다.
시흥타임즈 기자 es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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