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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연재] 시흥, 도시읽기 '수도권의 변경에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모델로' 2-5

⑤ 복음자리 마을의 건설과 정착

[편집자 주] 시흥타임즈는 안광일 건축사사무소 오막 소장과 함께 시흥의 역사와 도시 형성 과정,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살펴보는 기획 연재 ‘시흥, 도시읽기’를 시작한다. 연재는 총 3부, 10편으로 구성된다.

1부. 도시의 역사를 읽다.

2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④ 호조벌을 중심으로 한 환상형 도시 

- 호조벌이 만든 시흥의 독특한 도시구조

⑤ 복음자리 마을의 건설과 정착 

- 시흥의 시민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⑥ 시흥을 지켜온 사람들


⑤ 복음자리 마을의 건설과 정착 
- 시흥의 시민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글: 안광일 건축사사무소 오막 소장·우리동네연구소 운영위원] 

올해는 ‘복음자리’라는 이름이 생겨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복음자리 마을이라는 공동체 주택이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에 건설되고 자리잡은 것은 1977년이지만, 복음자리의 역사는 그보다 한 해 앞선 1976년 서울 양평동 뚝방 판자촌에서 시작되었다.

1975년 11월, 청계천 판자촌 철거로 쫓겨난 제정구와 정일우 신부는 양평동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판자촌 밖에서 주민들을 돕는 대신 주민들과 같은 조건에서 생활하며 삶을 나누는 길을 택했다. 판자촌의 방 하나를 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사랑방으로 사용했고, 1976년 김수환 추기경은 이곳에 ‘복음자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복음자리’는 주민들이 서로의 사정을 나누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의논하던 작은 방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양평동 판자촌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이때 일부 주민들이 함께 옮겨갈 땅을 찾기 시작했다. 각자 흩어져 다시 판자촌을 찾아가는 대신, 공동체를 유지한 채 새로운 삶터를 만들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땅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후보지를 찾아다닌 끝에 정착지로 선택된 곳이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소래면 신천리의 포도밭과 논이었다. 

양평동 철거민들은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독일의 가톨릭 구호단체인 MISEREOR로부터 10만 달러를 지원 받아 땅을 매입한 후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1977년 11월에 170가구가 함께 살아갈 마을을 준공한다. 

복음자리 사람들은 MISEREOR에서 지원받은 금액을 착실히 상환했고, 상환한 기금은 두 번째 공동체 주택을 건설하는 기금으로 사용된다. 그렇게 1979년 양평동, 사당동, 신림동, 안양 등에서 입주민을 모아 164세대의 한독마을을 건설한다. 하지만 2년 사이에 환경이 많이 바뀌었는데, 복음자리 건설당시 평당 5천원정도 하던 땅값은 2년뒤에는 약2만5천원으로 다섯배 가량 올라서 복음자리만큼의 부지면적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단층연립인 복음자리와 달리 2층 연립으로 지어졌는데 2층의 건물이 되면서 법규상 건설회사에 도급해야 해서 복음자리와 같이 건설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시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사무소에 공동체성을 가질 수 있는 배치안을 요구하였지만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토지비와 사업 조건의 제약 속에서 애초에 기대한 공동체적 관계가 공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결국 6동이 일렬로 배치된 마을이 된다. 후에 정일우 신부는 이를 보고 ‘철학없는 건축설계’라고 평가한다.




한독마을 이후 정일우 신부와 복음자리팀은 공동체 주택의 공간 구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거처와 공동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여러 평면 구상안들이 스케치되었고, 이러한 고민들이 훗날 목화연립의 계획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복음자리와 한독마을로 이어진 공동체 주택의 경험은 1980년대 중반 목화연립으로 확장되었다. 그 배경에는 서울 목동 신시가지 개발과 철거민들의 저항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정부는 외국손님 맞이와 성화봉송로 확보 등을 이유로 김포공항에서 잠실 종합운동장까지 이르는 길목의 판자촌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목동도 그 중 한 지역으로 1983년부터 시작된 목동 개발은 대규모 주택단지를 공급하는 사업이었지만, 그곳에서 살던 주민들에게는 삶터를 잃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이주 대책을 먼저 마련할 것을 요구하며 철거에 맞섰고, 이러한 투쟁은 1985년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착할 생활 터전을 요구하던 목동 철거민 105세대가 복음자리와 한독마을 인근으로 이주했다. 목동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목화연립이라 이름붙였고, 독일에서 마련한 지원금과 정부 융자금을 바탕으로 건설하였다.

공동체성을 고려한 공동주택은 건축 공간에도 반영되었다. 목화연립은 세 개 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정에 면한 외부 복도를 통해 이웃들이 연결되고 중앙의 마당을 향해 각 세대의 출입구가 놓였다. 이러한 배치는 집을 드나드는 일상 속에서 주민들이 서로 마주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구조로 읽을 수 있다.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함께 집을 짓고 새로운 지역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복음자리잼으로 유명한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자리회관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만나 배우고 교류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쌓인 신뢰와 협동의 경험은 이후 제정구 의원을 비롯한 주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개발에 목소리를 내는 힘이 되었다. 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환경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복음자리의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는 여기에 있다. 철거에 맞서 주거권을 요구하고 공동의 삶터를 건설했던 주민들의 경험은, 정착한 지역에서 개발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의 한 토대가 되었다. 제정구를 비롯한 복음자리 공동체의 인물들은 지역의 다른 주민·단체들과 만나 1991년 한국화약 공유수면 매립반대 시흥시민위원회, 이른바 ‘한반위’ 운동에 참여했다. 공동체 안에서 축적된 협동의 경험이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결합하여 지역 내 개발에 대한 공공성의 문제를 직시한 것이다.

이후 1995년부터 전개된 소래산 절개 반대운동에서도 시민들은 도시 개발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복음자리의 공동체 운동과 한반위, 소래산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실천은 자신의 삶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시흥 시민운동의 흐름을 만들었다.



1976년 양평동의 작은 사랑방에서 시작된 복음자리의 역사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시민들이 함께 책임지며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1977년 서울의 판자촌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철거민들이 공동체 주택을 건설하고 후에 정착한 지역에서 개발의 공공성에 대해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시민운동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 5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시흥은 신도시 조성이 이어지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사는 환경도 많이 변했고 경제수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복음자리가 보여준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공공성과 방향성을 고민한 역사는 지금의 시흥에도 여전히 필요한 시민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도시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는 이곳에 살고 있는 시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야 할 숙제고 다음세대를 위해 꼭 이루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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