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기획보도] 시흥시가 전국에서 네 번째로 인구증가율이 높은 도시로 나타났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8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8년 시흥시 인구(등록외국인,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자 미포함)는 2017년보다 29,023명 증가하며 인구증가율 전국 4위를 기록했다. 1위는 화성시(67,636↑), 2위는 김포시(31,078↑), 3위는 용인시(31,045↑)가 차지했다. 반대로 인근 안산시는 17,367명이 감소하며 전국 인구감소율 1위를 기록했다.2019년 3월 기준 시흥시 인구(등록외국인,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인 포함)는 51만 명으로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9년 41만 3913명, 2015년 44만 302명, 2018년 50만 1692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으며, 최근 공공주택지구 입주에 따른 사회적 인구 증가가 두드러진다. 실제로 1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연간 국내인구이동’ 자료를 보면, 시흥시는 전출자보다 전입자가 많아 6.3%의 순이동률을 기록했다. 순이동자 수도 2만 7천 명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 지난해 개통한 서해선과 공공주택지구개발사업 등 다양한 인구 유입 요인이 집중되면서
3월 11일 월곶 바오스앤밥스에서 열린 시흥타임즈 3주년 창간기념식 영상
[시흥시 기획보도] 온 국민이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비폭력‧평화를 표방한 전국적인 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민족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 시흥시는 3‧1운동이 발생한 서울과 인접해 시위 초기부터 열기가 고조됐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 단발적 만세 시위였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 아래 15일 동안이나 지속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흥시가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지사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그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니 수암면 비석거리로 모여라” 1919년 3월 30일, 통문을 전해 들은 수암면 주민들이 수암리 비석거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윤병소 지사(1893~미상)도 이 소식을 듣고 수암리로 갔다. 그는 각 리에서 모인 2,000여 명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면사무소 근처까지 진출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펼쳐진 시흥 지역 최대 만세운동 이날 수암면 비석거리에 울려 퍼진 ‘만세’는 시흥 지역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 안산시 수암동이지만,
[시흥시 기획보도] 마을 앞 호조벌에서 쌀이 많이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시흥시 미산동은 100여 세대가 쌀농사를 짓던 제법 번성한 마을이었다. 동네가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공장이 들어서고 주거환경이 악화하면서부터다. 주거공간과 공장시설의 혼재, 부족한 기반시설, 노후화 등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자 문제의식을 느낀 주민들이 최근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미산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미산동 주민 41명과 도시재생 전문가 3명, 시흥 청년 10명은 ‘미산동 마을변화 정책플러스’를 시작했다. 이들은 올해 1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마을을 직접 돌아보고 문제점을 파악했다. 인도 없는 도로, 조명 없는 거리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부족한 공동체 공간과 편의시설은 주민들이 가장 불편을 겪는 부분이다.주민들은 국내외 마을 변화 사례를 공유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보행자 안전 확보를 위한 인도 설치, 구 마을회관을 주민 소통 공간으로 조성, 운영하지 않는 공장을 활용한 새로운 거점 공간 조성 등이다. 전문가들은 마을 브랜드 제고를 강조했다. 가구거리와 연계한 공예 체험
[시흥시 기획보도] 2019년은 시흥시가 태어난지 30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년간 시흥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이제 막 30살의 청년이 된 시흥은 더 성장하기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서해안권 관광의 요충지로, 시민들이 행복한 대도시로 자리매김할 시흥시의 지난 30년을 되돌아본다. ‘시흥’이라는 명칭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의 지역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조선 정조 19년(1795)에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때(991) 금주의 별호를 취해 ‘시흥현’으로 개칭하면서 ‘시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시흥현은 100년 후인 1895년에는 시흥군으로 승격됐다. 1914년 안산군이 폐지되고 1989년 1월, 시흥군의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이 시흥시로 승격됐다. 9만명에서 47만명으로, 성장하는 시흥시1997년 장현동 신청사 이전, 2018년에는 배곧동 신설1989년 1월 1일, 시흥군에 속해있던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이 시흥시로 승격했다. 시 승격 4일후인 1월 5일 현재의 시흥시보
[시흥타임즈= 대표/편집장 우동완] 지방자치와 마을에 관심 있는 청년이 있었다. 대학에선 법학을 전공했고, 지역 청년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청년기본조례제정에도 앞장섰다. 어찌하여 대야동 주민자치회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게 됐고 여기서 주민과 마을, 그리고 청년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 31살, 가장 어린나이로 시흥시 기초의원에 당선된 그의 이름은 홍헌영 이다. 지난 6월 치러진 동시지방선거에서 홍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신천․대야․은행․과림 지역에 기초의원으로 출마 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기존 정치권의 나이대가 높은 시흥시에서 애 취급당하기 일쑤였고 기호도 나번 이었다. 기초의원선거에서 지역구별로 각 당이 2명을 출마 시키는 상황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는 가번과 달리 나번은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기호였다. 열심히 뛰었지만 늘 불안했다. “선거에 나가기까지도 힘든 결정이었고, 나가서도 늘 불안했죠. 그렇지만 일단 청년을 대표해서 나온 이상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당의 적극적인 나번 구하기 열풍에 힘입어 그
[시흥타임즈=대표/편집장 우동완]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로 7명의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정부가 제천·밀양 화재참사를 계기로 지난 4월 34만개 시설에 대한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했지만 6개월여 만에 또다시 화재참사가 일어나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시흥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상가건물을 불법으로 개조하거나 허가된 주택수보다 늘려 원룸을 꾸민 방들이 유난히 많은 정왕본동과 정왕1동은 화재 등 사고에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다. 스프링쿨러는 고사하고 소화기도 없으며 분리된 피난 시설은 꿈도 못 꾼다. 본래 근린생활시설(상가, 사무실)로 허가를 받은 건물을 소유자들이 칸을 막고 방을 만들어 임대를 놓으면서 한 개 층에 5~6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다. 이렇게 수익만을 위해 원룸을 꾸미고 임대를 놓다보니 쾌적한 환경을 보장받아야 할 주거권 역시 남의 나라 일이다.정왕본동에 위치한 한 원룸. 옆집 사람소리의 대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씽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소리, 변기에 물을 내리는 소리까지 여과 없이 들어온다. 제대로 구분된 벽체가 아니라 얇은 벽으로 칸만 막아 세를 논 것이다. 여기선 위아
[시흥시 기획보도] 시흥시가 친환경 의무급식 정책을 추진한 지 어느덧 10주년이 됐다. 무상급식과 유상급식, 선별급식과 전체급식을 떠나, 아이들에게 질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이 가장 첫 번째 교육이라는 인식을 정착시키기 위한 10년이었다. 시흥시는 지난 2010년 시흥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개정하고 다음해에는 학교급식센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친환경 의무급식에 대한 비전을 품은 시흥시는 쌀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시흥시는 현재 시흥쌀 ‘햇토미’를 학교 급식에 공급하고 있다. 햇토미는 조선조 효도대왕으로 유명한 정조대왕이 능행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포동 걸뚝수로 720m를 막아 처음 생산한 쌀로, 현재 곡창지대인 미산, 은행, 매화, 하중, 물왕, 광석, 도창, 포동 등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 햇토미는 자연저수지 7개에서 깨끗한 용수로와 친환경비료로 재배해 중금속 오염 우려가 적고 단백질과 아미로즈 함량이 낮이 미질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시흥시가 지난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공급한 햇토미는 총 50만690킬로그램에 이른다. 모두 우렁이재배된 햇토미로, 올해부터 초등학교에는 무농약 햇토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은 시흥시
[시흥타임즈=기획보도] '시흥월미농악'은 군자성황제, 새우개 장승놀이와 함께 시흥시에서 전승돼 오는 민속놀이 중 하나다. 그 시작은 시흥시지만 조선시대에는 경기도를 넘어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시기마다 행해지는 목적과 명칭이 달랐다. 정월대보름이면 세초(歲初) 벽사진경 및 기풍(祈) 행사의 목적으로 하며, 5월에는 파종 때 단오, 6월 김맬 때는 농번기 이므로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었다.7월에는 일손을 놓고 허리를 펴는 때이므로 호미씻이, 백중놀이라 했고, 8월에는 농민들의 경사스러운 명절(한가위), 10월에는 추수를 끝내고 공공을 축하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洞祭)’를 지낼 때에 놀던 풍물놀이였다. 그러나 그 목적이나 명칭이 어떻든지 시흥월미농악은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형성하고 마을을 하나로 만드는 민중의 대동놀이였다. ▶ 고종의 경복궁 중건 때도 ‘존재’ 현재 형태인 시흥월미농악의 시작은 언제쯤일까? 시흥내 그리고 타 지역의 구전 증언으로 볼 때, 시흥월미농악은 19세기 이전부터 연행됐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실시된 고증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고종 2년(1865)에 경복궁 중건 때 부역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시흥타임즈 대표/편집장=우동완] 태양은 뜨거웠다. 건물마다 쉼없이 뿜어대는 에어컨의 열기가 더해져 거리는 그야말로 ‘불’이었다. 5분만 걸어도 셔츠가 땀에 젖었다. 30일 시흥시의 낮 최고기온은 37도까지 올라갔고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휴가철이기도 하고 너무 뜨거운 탓에 거리는 한산했지만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서민들과 갈 곳 없는 노인들은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신천동 신천변 거리 나무그늘 아래 7~8명의 노인들이 모여 음료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에어컨이 있는 무더위 쉼터나 경로당 같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냐”고 묻자, “아파트 같은 곳이나 그런 게 있지 우리 동네엔 없어” 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경로당엔 가는 사람이나 가지, 회원 가입도 해야 하고 불편해서 그냥 여기 앉아 있는 거지” 라며 “에어컨은 바라지도 않고 이렇게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정자 같은 거나 있었음 좋겠어”라고 말한다.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나무그늘 아래다. 시가 신천천 공사를 하면서 보기 좋게 데크와 벤치를 만들어 놨지만 그곳은 그늘 없는 땡볕이다. ▲같은 날 목감동 국민임대아파트 경로당엔 노인 10여명이 폭염을 피해 모여 있다. 이곳은 아파트 단지에서 운영하는 경로당으로 에